물이 사라진 이스파한, 그리고 분노의 불길
찬란한 페르시아 문화의 심장, 이란 이스파한. 이곳은 한때 풍요로운 농업과 아름다운 자연으로 유명했지만, 지난달 29일, 이 지역의 생명선이었던 양수장에서 거대한 화염이 치솟았다. 다른 지역으로 물을 보내는 수도관이 파괴되며, 300km 떨어진 야즈드 지방으로 가야 할 물은 갈 길을 잃었다. 약 50만 명의 주민이 먹고 쓸 물을 잃은 이 사건의 배후는 놀랍게도 외부의 적이 아닌 이스파한 주민들이었다. 농부들로 구성된 시위대는 "루드강의 물을 야즈드로 빼앗기고 있다"며 양수장을 공격했다. 이란 현지 매체들은 "전례 없는 물 부족으로 이란이 말라가고 있다"고 보도하며, 이 사건이 단순한 지역 갈등을 넘어 국가적 위기의 신호임을 경고했다.
한국에서는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콸콸 나오는 풍경이 익숙하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갈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세계자원연구소(WRI)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25%가 사는 25개국이 극심한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약 40억 명은 매년 최소 한 달간 물 부족을 겪는다. 물 부족은 단순히 마실 물이 없는 문제를 넘어 농업, 축산업, 전력 생산, 제조업 등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경제와 사회를 흔드는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물 부족의 숨은 피해자: AI와 데이터센터
물 부족이 산업에 미치는 영향 중 가장 예기치 않은 분야는 인공지능(AI)이다. AI의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는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며 뜨거워진 서버를 식히기 위해 막대한 양의 냉각수를 필요로 한다. 이 냉각수는 한 번 사용하면 80%가 증발하고, 남은 물도 오염돼 재사용이 어렵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2년 데이터센터 확장으로 물 사용량이 전년 대비 34% 늘어 17억 갤런(올림픽 수영장 2500개 분량)을 썼고, 구글은 56억 갤런을 소비했다. UC리버사이드의 샤오레이 렌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챗GPT가 질문 하나에 답할 때마다 7.6~29.9mL의 물이 필요하다. 미국 애리조나처럼 물 부족이 심한 지역에서는 물 한 컵(200mL)으로 질문 6개에 답할 수 있을 정도다.
이런 물 소비가 지역 주민들과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2023년 우루과이에서는 74년 만의 최악 가뭄 속 구글 데이터센터 건설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칠레와 말레이시아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AI가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기술로 주목받는 가운데, 그 이면에서 물 부족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의 ‘물 비상’
물 부족은 첨단 제조업에도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반도체 공정은 초순수 물을 대량으로 사용하며, 삼성전자 기흥·화성·평택 사업장은 하루 30만5000톤, 대만 TSMC는 공장 하나에서 9만9000톤을 쓴다. 세계경제포럼은 2040년쯤 반도체 공장의 40%가 극심한 물 부족 지역에 위치할 것으로 전망한다. 자동차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유럽자동차제조협회에 따르면, EU 자동차 제조사들은 2005~2022년 사이 차 한 대당 물 사용량을 34.4% 줄였고, GM은 멕시코 공장에서 물 절약을 위해 5700만 달러를 투자했다. 현대차의 미국 조지아 공장은 하루 665만 갤런을 쓰는 조건으로 승인받았으며, TSMC가 있는 대만은 5억4500만 달러 규모의 담수 공장을 짓고 있다.
식탁 위의 변화: 맥도널드와 물 부족
물 부족은 우리의 식습관까지 바꾸고 있다. 맥도널드가 소고기 버거 대신 닭고기 메뉴를 늘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고기 1kg을 생산하려면 1만5500L의 물이 필요하지만, 닭고기는 3900L, 돼지고기는 4800L로 훨씬 적다. 가뭄으로 사료 공급이 줄며 미국 소고기 가격이 2020년 대비 두 배로 뛴 상황에서, 닭고기는 비용 절감의 대안이 됐다. 음료 산업도 타격을 받고 있다. 멕시코에서 컨스텔레이션 브랜즈는 6억6000만 달러를 들인 양조장을 물 부족 문제로 포기하고, 13억 달러를 추가로 들여 새 공장을 지었다.
출처 : 조선일보
물 부족의 근원: 과잉 수요와 기후변화
지구의 물은 대부분 바닷물이고, 담수는 2.5%에 불과하다. 그중 99.23%는 빙하에 갇혀 있어 실제로 쓸 수 있는 물은 극히 제한적이다. 농업과 발전용수로 쓰인 물은 증발하거나 바다로 흘러가며, 인류는 강·호수·지하수에 의존한다. 하지만 1960년 이후 물 수요는 두 배 이상 늘었고, 기후변화로 공급은 줄었다. 지구 온도가 올라가며 물이 더 빨리 증발하고, WRI는 2050년까지 10억 명이 추가로 물 부족에 시달릴 것으로 예측한다. 경제 손실은 70조 달러(약 10경300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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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과 아프리카: 물 부족이 낳을 정치적 불안
물 부족은 지역별로 편차가 크다. 중동·북아프리카는 인구의 83%, 남아시아는 74%가 극심한 물 부족에 시달린다. 특히 개발도상국은 개발 수요로 물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WRI는 2050년까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물 수요가 163% 증가할 것으로 보고, 이는 남미(43%)의 네 배에 달한다. 이런 상황은 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란 이스파한의 양수장 공격처럼, 물 분배를 둘러싼 갈등은 이미 현실이다. 독일 도이체벨레는 "물 부족이 ‘제2의 아랍의 봄’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하며, 기후변화 대응 실패가 테러 조직의 발호를 부추길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란 이스파한의 불길에서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장, 맥도널드의 닭고기 메뉴까지, 물 부족은 산업과 일상을 뒤흔들고 있다. 기후변화와 과잉 수요로 악화된 이 위기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경제, 사회, 정치의 총체적 도전이다. 물 한 컵이 소중한 시대, 우리는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메말라가는 지구는 우리 모두를 삼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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