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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납세 : 일본이 지방을 살리는 법

머니 스토리

by 인앤건LOVE 2025. 3. 3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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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본의 독특한 제도인 고향납세(ふるさと納税)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인구 감소, 도시 쇠퇴, 지방 소멸이라는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한 지역을 살리기 위해 일본이 내놓은 이 제도는 단순한 세금 정책을 넘어 지역 경제와 공동체를 되살리는 혁신적인 실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고향납세의 개념, 작동 방식, 성공 사례, 그리고 한계와 가능성을 살펴보며, 이를 통해 한국의 고향사랑기부제가 배울 점은 무엇인지 고민해보겠습니다.


고향납세란 무엇일까?

고향납세는 개인이 원하는 지방자치단체에 기부(납세)를 하면 세금 공제 혜택을 받고, 기부한 지자체로부터 지역 특산품 같은 답례품을 받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2008년에 도입된 이 제도는 인구 감소로 세수가 줄어드는 지방재정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지역 간 재정 격차를 줄이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2000엔을 초과하는 기부액에 대해 소득세(국세)와 주민세(지방세)를 공제받을 수 있으며, 기부액의 30% 이내에서 지자체가 제공하는 답례품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제도는 행정학의 티부 모형(Tiebout Model)에서 영감을 받은 측면이 있습니다. 티부 모형은 지자체가 독자적인 조세 징수권을 가지면 주민들이 세금과 서비스의 질을 보고 지역을 선택한다는 '발에 의한 투표(Voting with Feet)'를 가정하는데요. 고향납세는 주민이 세금을 낼 곳을 직접 선택한다는 점에서 이 이론을 현실에 적용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부자는 세금 감면과 답례품이라는 이득을 얻고, 지자체는 재정 여력을 확보해 지역 발전에 투자할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윈윈 구조인 셈이죠.


고향납세의 성장과 배경

일본 총무성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고향납세 건수는 5894만 건, 총 기부액은 1조 1175억 엔(약 11조 원)에 달했습니다. 이는 2008년 도입 초기와 비교하면 엄청난 성장세입니다. 특히 2013년을 기점으로 건수와 금액이 급격히 늘었는데, 그 배경은 무엇일까요?

일본 최초의 고향납세 플랫폼 후루사토초이스를 운영하는 트러스트뱅크의 카와무라 켄이치 대표는 세 가지 요인을 꼽습니다.

첫째, 세금 혜택과 답례품 제공입니다. 일본의 납세 제도는 공제 혜택이 적은 편인데, 고향납세는 기부액 대부분을 돌려받을 수 있는 '세액공제'를 제공해 급여 생활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습니다. 초기에는 답례품이 없었지만, 특산품이 추가되면서 인기가 폭발했죠.

둘째, 정부의 제도 개선 노력입니다. 세금 공제 한도를 늘리고 절차를 간소화하며, 오프라인 중심의 공공사업에서 벗어나 2012년 민간 시장을 개방한 점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민간 플랫폼들이 경쟁적으로 참여하면서 기부가 훨씬 쉬워졌고, 이용률이 급증했습니다.

셋째, 시장 개방과 경쟁입니다. 민간 사업자들이 뛰어들며 지자체 간 선의의 경쟁이 촉진되었고, 이는 고향납세의 상승 작용을 일으켰습니다. 2008년 73억 엔에 불과하던 기부액이 2023년 1조 엔을 넘기며, 고향납세는 일본 지방재정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역을 살리는 고향납세의 힘

고향납세는 단순히 돈을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몇 가지 성공 사례를 통해 그 효과를 살펴볼게요.

  1. 유바리(夕張)시: 홋카이도에 위치한 이 작은 도시는 석탄 산업 쇠퇴로 2006년 재정 파산을 겪었습니다. 인구는 6000명 남짓. 고향납세 도입 후 약 30억 엔(294억 원)을 모았고, 지역 특산품인 멜론이 큰 인기를 끌며 부채를 632억 엔에서 51억 엔으로 줄였습니다. 재정 회복의 발판을 마련한 셈이죠.
  2. 미나미사츠마(南さつま)시: 가고시마현의 과소 지역으로, 인구 3만 명 수준입니다. 고향납세로 매년 40~50억 엔을 모으며, 2022년에는 53억 5000만 엔(524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시 예산의 25% 이상을 차지하는 큰 금액으로,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3. 미야코노조(都城)시: 미야자키현의 이 도시는 2022년 196억 엔을 모아 일본 1765개 지자체 중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자금으로 보육료, 의료비, 임산부 검진비 무료라는 '3무 정책'을 시행 중이며, 2016년 7명에 불과하던 이주자가 2023년 439명(60%가 20~30대)으로 늘었습니다.
  4. 가미시호로(上士幌)초: 홋카이도의 산골 마을로, 인구 5000명 선이 붕괴되며 쇠락의 길을 걷던 곳입니다. 고향납세로 연간 15억 엔 이상을 모으며 보육 환경을 개선하고 이주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 결과, 4년 만에 인구 5000명을 회복했습니다.

이 사례들은 고향납세가 재정자립도를 높이고, 인구 유입을 유도하며,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 보여줍니다. 특히 교류인구(왕래하는 인구)와 관계인구(지역에 애착을 가진 집단)를 늘려 정주인구(정착 인구)로 전환하려는 노력은 지역 공동체를 되살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점과 한계

물론 고향납세에도 그림자는 있습니다.

첫째, 수도권 세수 감소입니다. 기부자가 지방에 납세하면 거주지 주민세가 줄어드는데, 요코하마시는 2022년 230억 엔(2000억 원)의 세수가 줄었다고 밝혔습니다. 도쿄를 포함한 대도시권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며, 재정 불균형 논란이 커지고 있죠.

둘째, 답례품 경쟁 과열입니다. 제도의 취지는 '마음의 고향'에 기부하라는 것이었지만, 기부자들이 답례품의 가성비에 더 끌리면서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일부 지자체는 기부액의 30%를 넘는 고가 답례품을 제공하며 과당 경쟁에 뛰어들고 있죠.

셋째, 지속 가능성 문제입니다. 고향납세가 단기적인 재정 충족에는 성공했지만, 장기적으로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재정에 의존하던 지자체가 기부금에 의존하는 구조로 바뀔 위험도 있습니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한국도 고향사랑기부제를 2023년부터 시행하며 일본의 고향납세를 모델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로, 일본처럼 폭발적인 성장은 이루지 못하고 있죠. 한국과 일본은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이라는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맥락은 다릅니다. 한국은 수도권 집중도가 일본보다 훨씬 심각하고, 지방의 재정자립도는 더 낮은 편입니다.

고향납세의 성공 요인을 한국에 적용하려면 몇 가지 과제가 필요합니다.

첫째, 인센티브 강화입니다. 세액공제 한도를 늘리고 답례품의 매력을 높여 기부 유인을 키워야 합니다.

둘째, 민간 참여 확대입니다. 일본처럼 민간 플랫폼을 적극 활용해 접근성을 높이고 경쟁을 유도해야 합니다.

셋째, 지역 맞춤형 전략입니다. 각 지자체가 특색 있는 정책과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해 단순한 기부 이상의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일본의 고향납세는 '세금 제도의 근간을 흔든다'는 비판을 딛고 지방을 살리는 강력한 도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는 정치적 상상력, 위기 극복 의지, 그리고 민간과의 협력이 어우러진 결과물입니다. 지방분권과 재정자립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고향납세는 지역의 물줄기를 바꾸는 수원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고향사랑기부제도 이런 변화를 꿈꿀 수 있을까요? 낡은 관행을 깨고 혁신적인 해법을 찾는다면, 지방 소멸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첫걸음이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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