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유럽에서 불붙은 미국산 불매운동: 소비자의 힘과 그 의미

머니 스토리

by 인앤건LOVE 2025. 3. 27. 20:10

본문

최근 유럽 곳곳에서 미국산 제품 불매운동이 뜨겁게 번지고 있다.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오레오, 코카콜라, 잭 다니엘 위스키 같은 일상 속 익숙한 브랜드들이 유럽 소비자들의 장바구니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 움직임의 배경에는 미국의 대유럽 무역 정책과 정치적 발언이 자리 잡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과 그린란드 병합 발언은 특히 덴마크를 중심으로 반미 감정을 키웠고, 이는 곧 소비자 행동으로 이어졌다. 과연 이 불매운동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그리고 이 작은 선택들이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불매운동의 시작: 개인에서 집단으로

아일랜드에서 영어와 역사를 가르치는 29세 교사 모야 오설리반(Moya O’Sullivan)의 이야기는 이 운동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서랍장을 열고 깜짝 놀랐다. 크림치즈, 치약, 위스키, 탄산음료 등 일상에서 쓰던 물건들이 죄다 미국 브랜드였다. 고민 끝에 그녀는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유럽산 대체품으로 교체했다. 잭 다니엘 대신 아일랜드 위스키를, 코카콜라 대신 지역 브랜드 음료를 선택했다. 그녀의 선택은 단순한 개인적 결정에 그치지 않았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영국에 사는 33세 우체부 블랙리지(Blackridge)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그는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대신 영국산 크림치즈를, 헬만즈 마요네즈 대신 직접 만든 마요네즈를 선택했다. 심지어 맥도날드 커피와 시에라 네바다 맥주까지 끊었다. 그는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다”라며 주변 친구들도 함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개인의 작은 실천이 소셜 미디어를 타고 확산되며 집단적 움직임으로 변모하고 있다.


유럽 전역으로 번지는 불매 열기

유럽 곳곳에서 불매운동은 이미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스웨덴의 소비자 단체는 페이스북에서 8만 1천 명의 회원을 모았고, 덴마크의 소비자 단체는 9만 명을 돌파했다. 이들은 매일 각종 제품의 출처를 묻고 유럽산 대체품을 추천하는 글을 올린다. 덴마크 최대 유통업체 살링(Salling) 그룹은 소비자 요구에 발맞춰 슈퍼마켓에 ‘유럽산 제품’을 알리는 검정 별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살링 그룹의 CEO는 링크드인에서 “고객이 원하는 선택을 돕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특히 덴마크에서는 트럼프의 그린란드 병합 발언이 불매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그린란드는 덴마크 자치령으로, 이 발언은 덴마크인들에게 자국 주권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다. CNN에 따르면, 이 사건 이후 덴마크 내 반미 정서가 급격히 확산되며 미국산 제품이 매장에서 외면받고 있다. 스웨덴, 영국, 아일랜드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며 불매운동은 국경을 넘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경제적 파급력: 눈에 보이지 않는 영향

이 불매운동이 실제 미국 경제에 어느정도 타격을 줄지는 아직 미지수다. CNN은 소비자 운동의 경제적 영향을 측정하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다만, 몇 가지 눈에 띄는 변화는 감지된다. 자동차 분석 회사 자토(JATO)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시작된 뒤 유럽 내 테슬라 판매량이 급감했다. 2025년 1월 유럽 전역에서 테슬라 차량 9,913대가 팔렸는데, 이는 전년 동기(18,121대)의 절반 수준이다. 테슬라처럼 눈에 띄는 미국 브랜드가 타격을 받는 모습은 불매운동의 상징적 효과를 보여준다.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도 유럽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유럽인들이 “내 돈이 미국 경제를 돕는 데 쓰이는 걸 원치 않는다”며 아마존 대신 지역 플랫폼을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개별적 보이콧이 미국 전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본다. 미국 수출의 주요 품목인 첨단 기술 제품이나 대규모 산업재는 일반 소비재와 달리 불매운동의 직접적 타격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불매운동의 더 큰 그림: 미국을 넘어선 저항

흥미롭게도 유럽의 불매운동은 미국산 제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에 반발해 이들 국가 제품을 피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산 보드카와 이스라엘산 농산물은 이미 유럽 내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 기피 대상이 됐다. 이런 흐름은 단순한 소비 행위를 넘어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 진화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불매운동이 단순히 경제적 압박을 넘어 상징적 저항의 의미를 갖는다고 믿는다. 모야 오설리반은 “미국 경제에 영향이 없더라도 내 돈이 트럼프의 정책을 지원하는 데 쓰이는 걸 막고 싶다”고 말했다. 블랙리지도 “작은 선택이지만 내 신념을 지키는 방법”이라며 의지를 다졌다. 이들에게 불매운동은 성공 여부를 떠나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통로다.


소비자의 힘, 어디까지 갈까?

역사적으로 불매운동은 사회 변화를 이끄는 강력한 무기였다. 1950년대 미국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은 흑인 민권 운동의 상징이 됐고, 198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운동은 글로벌 불매로 이어져 정권을 압박했다. 오늘날 유럽의 미국산 불매운동도 비슷한 맥락에서 시작됐지만, 그 결과는 아직 불확실하다.

현실적으로 모든 미국산 제품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 ‘순수 유럽산’을 찾는 것도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생산된 제품이라도 원료나 부품이 미국에서 온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매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은 “완벽하지 않아도 시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유럽에서 불붙은 미국산 불매운동은 단순한 소비 트렌드를 넘어 정치적, 문화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누군가에겐 크림치즈 하나 바꾸는 작은 실천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겐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큰 발걸음이다. 이 운동이 미국 경제에 실질적 타격을 줄지, 아니면 상징적 저항으로 남을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소비자의 선택이 세상을 바꾸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728x9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