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착륙은 조작이다”, “정부가 비밀리에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 같은 음모론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이 왜 생기는 걸까? 최근 영국 노팅엄대학교(University of Nottingham) 대니얼 졸리(Daniel Jolley) 교수팀이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25년 3월 12일, 국제 학술지 Journal of Health Psychology에 실린 이 연구는 수면 부족이 음모론적 사고를 촉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뉴욕포스트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음모론에 더 쉽게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연구팀은 1,100여 명을 대상으로 두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첫 번째 실험에서는 540명의 참가자가 과거 한 달간의 수면 질을 평가받은 뒤, 2019년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를 접했다. 하나는 “화재가 우연한 사고”라는 사실 기반 정보였고, 다른 하나는 “고의적인 은폐가 있었다”는 음모론적 내용이었다. 놀랍게도 수면 질이 낮은 참가자들은 음모론적 이야기를 더 믿는 경향을 보였다.
두 번째 실험(575명 참가)에서는 이 현상의 심리적 원인을 깊이 파헤쳤다. 결과는 더 흥미로웠다. 수면 부족은 우울증, 분노, 편집증 같은 심리적 요인을 악화시키며, 이들이 음모론 믿음으로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졸리 교수는 “수면은 정신 건강과 인지 기능의 핵심”이라며, “수면 부족이 음모론적 사고를 부추기는 우울증과 같은 감정 상태를 강화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수면과 음모론의 연관성은 무엇이고, 이 연구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잠을 자는 습관이 단순히 건강을 넘어 사고방식까지 바꿀 수 있다는 이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연구의 시작: 수면과 음모론의 만남
음모론은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설명하려는 시도다. 예를 들어, 2019년 4월 15일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발생한 화재는 공식적으로 전기 합선이나 담배꽁초로 인한 사고로 결론 났다. 하지만 일부는 “정부가 진실을 숨기고 있다”거나 “테러 조직의 소행”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런 음모론이 왜 생기고, 누가 더 쉽게 믿을까? 노팅엄대 연구팀은 과거 연구에서 인지적 편향(예: 무작위 사건에서 패턴 찾기), 사회적 영향, 성격 특성(나르시시즘 등)이 음모론 믿음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주목했다. 하지만 일상적인 요인, 특히 수면의 역할은 간과되어 왔다.
이에 연구팀은 수면의 질이 음모론적 사고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으로 검증했다. 첫 번째 실험에서 540명은 Pittsburgh Sleep Quality Index(PSQI) 같은 표준화된 설문으로 수면 질을 측정한 뒤, 노트르담 화재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를 읽었다. 음모론적 내러티브는 “정부와 교회가 의도적으로 화재를 일으켜 문화재 파괴를 은폐했다”는 식이었고, 사실 기반 이야기는 “조사 결과 우연한 사고”라는 내용이었다. 결과는 명확했다. 수면 질이 낮을수록 음모론을 더 신뢰하는 비율이 높았다. 이는 단순히 피곤함을 넘어 인지 능력과 감정 조절의 저하가 반영된 결과였다.
두 번째 실험: 우울증이 연결고리?
두 번째 실험은 이 연관성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파헤쳤다. 575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수면 질과 음모론 믿음 사이에 어떤 요인이 작용하는지 분석한 것이다. 연구팀은 우울증, 분노, 편집증을 주요 변수로 설정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수면 질이 낮은 사람들은 음모론을 더 쉽게 받아들였고, 특히 우울증이 이 둘을 잇는 핵심 요인으로 나타났다. 분노와 편집증도 영향을 미쳤지만, 그 효과는 우울증만큼 일관적이지는 않았다.
왜 우울증이 중요한 걸까? 수면 부족은 뇌의 전전두엽(인지와 판단을 담당) 기능을 떨어뜨리고, 편도체(감정 반응 담당)를 과활성화시킨다. 이는 부정적인 감정, 특히 우울증을 악화시킨다. 우울한 상태에서는 세상을 불신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음모를 상상하기 쉬워진다. 예를 들어, “모든 게 조작이다”라는 생각은 우울증 환자의 무력감과 불안에서 비롯될 수 있다. 졸리 교수는 “수면 부족은 정신 건강을 해치고, 이는 음모론적 사고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수면 부족과 음모론: 과학적 근거
수면 부족이 심리와 인지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미국수면재단(NSF)에 따르면, 성인은 하루 7~9시간 수면이 필요하며, 부족 시 기억력 저하, 감정 기복, 판단력 약화가 나타난다. 특히 2023년 하버드 연구는 수면 부족이 불안과 우울증을 30~50% 증가시킨다고 밝혔다. 노팅엄대 연구는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이런 상태가 음모론적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설을 실증했다.
첫 실험에서 수면 질이 낮은 참가자들이 음모론을 더 믿은 이유는 무엇일까? 피곤한 뇌는 복잡한 정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기보다 단순하고 감정적인 설명을 선호한다. 노트르담 화재처럼 원인이 불분명한 사건에서 “누군가 의도했다”는 이야기는 사고 과정을 줄이고 불안을 해소해준다. 두 번째 실험은 이를 심리학적으로 뒷받침했다. 우울증은 세상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분노와 편집증은 외부 위협을 과장해 음모론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음모론의 사회적 파장과 대응
음모론은 단순한 호기심으로 끝나지 않는다. 백신 거부(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기후변화 부정, 정치 불신 같은 실질적 문제가 뒤따른다. 예를 들어, 2021년 YouGov 조사에서 영국인의 60%가 적어도 하나의 음모론을 믿는다고 답했다. 미국에서는 2020년 대선 조작설이 폭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노팅엄대 연구는 이런 현상에 수면 부족이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해결책으로 “수면 질 개선”을 제안했다. 졸리 교수는 “수면 중심의 공중보건 캠페인이나 불면증 치료가 음모론 확산을 줄이는 보호막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면 개선은 인지 행동 치료(CBT-I)나 규칙적인 생활 습관으로 가능하다. 예를 들어, 매일 같은 시간 취침, 카페인 줄이기, 취침 전 스마트폰 사용 금지는 수면 질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개인적 차원에서든 사회적 차원에서든, 잠을 잘 자는 습관이 비판적 사고를 키우고 잘못된 믿음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 삶에 주는 교훈
이 연구는 단순히 학문적 호기심을 넘어 일상적 교훈을 준다. 당신은 최근 얼마나 잘 잤는가? 피곤한 날 음모론 유튜브 영상에 끌린 적은 없었나? 수면 부족은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사고방식까지 왜곡할 수 있다. 노팅엄대 연구는 잠의 중요성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음모론이 판치는 세상에서 비판적 사고를 유지하려면, 우선 침대에서 충분히 쉬는 게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수면과 음모론의 연관성은 앞으로 더 연구될 주제다. 졸리 교수는 “향후 통제된 실험으로 수면 부족이 음모론 믿음을 얼마나 직접적으로 키우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밝혔다. 잠을 잘 자는 삶이 단순히 건강을 넘어 민주주의와 사회적 신뢰를 지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오늘 밤 일찍 잠드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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