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6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발표한 '2025년 기업규제 전망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전국 50인 이상 508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96.9%가 "올해 경제위기가 올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단순한 우려를 넘어, 한국 경제가 심각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특히 이번 조사는 경제위기 여부를 묻는 문항을 처음 포함했는데, 이는 대내외 상황이 그만큼 엄중하다는 경총의 판단을 반영한다. 여기에 한국경제인협회의 자금사정 조사까지 더해지며, 기업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구체적인 수치로 드러났다. 매출액 상위 1000대 기업 중 30%가 지난해보다 자금 상황이 악화됐다고 응답한 것이다. 과연 2025년 한국 경제는 어떤 위기를 맞이하게 될까?
경제위기 전망: 1997년 외환위기 수준일까?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22.8%는 "올해 경제위기가 1997년 외환위기보다 심각할 것"이라고 답했고, 74.1%는 "1997년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위기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경제위기 우려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고작 3.1%에 불과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 경제에 깊은 상처를 남긴 사건이었다. 당시 IMF 구제금융을 받으며 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률이 치솟았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이번 조사에서 기업들이 그때를 떠올리며 위기감을 드러낸 것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 글로벌 무역규제 강화, 안보 지형 변화, 정치적 불확실성 등 복합적인 요인이 얽히며 경제 불안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귀환은 큰 변수로 작용한다. 트럼프 2기 정부는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아, 한국의 주요 수출 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조사에서 기업의 45.7%가 "글로벌 무역규제 강화"를 규제환경 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꼽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 국내 정치 불안까지 겹치며 환율 변동성 확대(47.2%), 소비 심리 위축(37.8%), 투자 심리 위축(26.0%) 등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기업들은 이미 자금 사정 악화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이는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규제환경 악화: 기업의 숨통을 조이는 요인
기업들이 느끼는 또 다른 부담은 바로 규제환경이다. 조사에 따르면, 34.5%의 기업이 "올해 규제환경이 전년보다 악화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지난해 조사(14.8%)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로, 규제에 대한 기업들의 불만이 급격히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년과 유사할 것"이라는 응답은 57.4%, "개선될 것"이라는 응답은 8.1%에 그쳤다. 규제환경 악화의 이유로는 글로벌 무역규제 강화(45.7%) 외에도 국회의 기업 규제 입법 강화(29.1%), 정부의 규제혁신 의지 약화(26.9%) 등이 꼽혔다.
기업들이 가장 큰 부담으로 느끼는 규제는 무엇일까? 복수응답 결과, 38.4%가 '통상임금 범위 확대 등 임금 부담'을 1위로 지목했다. 이어 중대재해처벌법 등 안전 규제(28.3%), 주52시간제 등 근로시간 규제(22.8%)가 뒤를 이었다. 이러한 규제들은 기업 활동을 억누르며 비용 증가와 운영의 유연성 저하를 초래한다. 예를 들어, 통상임금 범위 확대는 인건비 부담을 키우고,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에 과도한 책임을 지우며 경영 의사결정을 위축시킨다. 주52시간제 역시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제한해 생산성 향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내외 불확실성: 세계 질서 개편과 정치 불안
2025년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한마디로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먼저, 글로벌 차원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정책은 관세전쟁을 재점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반도체, 자동차 등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게다가 미·중 간 전략적 경쟁 심화와 안보 지형 변화는 글로벌 공급망을 흔들며 기업들의 예측 가능성을 낮춘다. KDI와 산업연구원의 최근 보고서에서도 2025년 세계 경제 성장률이 3.0%로 둔화되고, 한국 경제 성장률이 2% 내외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정치 불안이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른다. 최근 정치적 갈등과 불확실성은 환율 변동성을 키우고, 소비와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조사에서 기업의 47.2%가 "환율 변동성 확대에 따른 수출 경쟁력 약화"를 우려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정치적 불안은 경제정책의 일관성을 떨어뜨리고, 기업들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 어렵게 만든다. 이는 결국 경제 활력 저하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기업이 바라는 규제혁신: 정부의 역할은?
위기 속에서 기업들은 정부에 무엇을 바랄까? 조사 결과, 기업이 가장 원하는 규제혁신 정책으로 "규제 총량 감축제 강화"(37.2%), "적극행정에 대한 공무원 면책제도 강화"(23.4%),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전환"(22.4%)이 꼽혔다. 이는 현재의 포지티브 규제 방식(허용된 것만 가능)이 기업 활동을 과도하게 억제하고 있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네거티브 규제(금지된 것 외에는 모두 가능)는 기업의 자율성을 높이고 혁신을 촉진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김재현 경총 규제개혁팀장은 "세계 무역규제 강화와 대내 정치 불안으로 기업들은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규제개혁은 예산 투입 없이도 기업 투자와 고용 창출을 유도하는 가장 효과적인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규제개혁은 경제 활력을 회복시키는 데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대재해처벌법의 과도한 처벌 조항을 완화하거나 주52시간제에 유연성을 더한다면 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2025년을 위한 제언: 위기를 기회로
2025년 한국 경제는 분명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위기는 동시에 기회를 낳는다. 글로벌 무역규제 강화 속에서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디지털 경제와 AI 등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한다면 한국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정부는 기업의 목소리를 반영해 규제혁신에 속도를 내고, 정치적 안정성을 회복해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힘써야 한다.
기업 역시 수동적으로 위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자금 사정 개선과 비용 절감을 위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공급망 다변화나 내수 시장 확대를 통해 외부 충격에 대한 회복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정부와 기업, 국민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협력한다면, 1997년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2025년은 한국 경제의 회복력과 혁신이 시험대에 오르는 해다. 지금
의 불안이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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