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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언, 겸손과 평화

궁금이

by 인앤건LOVE 2025. 4. 25.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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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언은 그의 삶과 신앙을 반영한 간소하고 겸손한 메시지로, 2025년 4월 21일 선종 후 교황청에 의해 공개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마지막 바람 : 겸손과 평화의 유언

2025년 4월 21일,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가 88세의 나이로 선종했습니다. 그는 가난한 이들의 수호 성인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따르며, 재위 12년 동안 청빈, 포용, 개혁의 상징으로 전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교황청이 공개한 그의 유언은 그의 삶과 신앙의 핵심을 담고 있으며, 단순함과 성모 마리아에 대한 헌신, 그리고 인류의 평화를 향한 염원을 보여줍니다. 이 글에서는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언과 그의 삶, 그리고 그가 남긴 메시지의 의미를 조명해 보겠습니다.


1. 유언의 핵심: 단순함과 성모 마리아에 대한 헌신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언은 2022년 6월에 작성된 것으로, 그의 선종 후 교황청에 의해 공개되었습니다.

유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간소한 무덤: “(나의) 무덤은 특별한 장식 없이, 단순해야 할 것입니다. 비문엔 ‘프란치스코(라틴어 Franciscus)’만 새겨져 있어야 합니다.”
  • 안장 장소: 교황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이 아닌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안장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생전에도 이곳에서 묻히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으며, 유언에서 “나는 평생 동안 사제이자 주교로서 언제나 주님의 어머니, 복된 성모 마리아께 스스로를 맡겨왔다”며 이곳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 묘소 위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의 파올리나 경당과 스포르차 경당 사이 통로에 묘소를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 평화와 인류애: 유언은 “세계 평화와 인류의 형제애를 위해” 말년의 고통을 주님께 바친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되며, 그의 삶의 마지막까지 평화에 대한 열망을 강조했습니다.

이 유언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그는 재위 기간 동안 화려한 교황의 전통을 거부하고, 사도궁 대신 성녀 마르타 호텔에 거주하며, 금으로 만든 어부의 반지 대신 도금한 은반지를 착용했습니다. 그의 유언 역시 이러한 청빈과 겸손의 정신을 이어가며, 죽음마저도 단순하고 소박하게 맞이하고자 했음을 보여줍니다.


2.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 청빈과 개혁의 여정

프란치스코 교황(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은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화공학을 전공하고 나이트클럽 경비원으로 일했던 그는 1958년 예수회에 입회하며 사제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969년 사제 서품을 받고,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 2001년 추기경에 서임된 그는 2013년 베네딕토 16세의 사임 후 콘클라베에서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역사상 최초의 남아메리카 출신, 예수회 출신, 비유럽권 출신(시리아 출신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만) 교황으로, 가톨릭 교회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재위 기간 동안 그는 다음과 같은 주요 업적을 남겼습니다.

  • 청빈의 실천: 대주교 시절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빈민가를 방문하며 가난한 이들과 소통했습니다. 교황 즉위 후에도 사도궁을 거부하고 검소한 생활을 유지했습니다.
  • 교황청 개혁: 바티칸 은행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성추문과 부패에 단호히 대응하며 교황청의 관료제적 폐해를 개혁하려 했습니다.포용적 태도: 동성애자, 이혼자, 성소수자에 대한 포용적 메시지를 전하며 교회의 문을 넓혔습니다. 2023년 동성애 커플에 대한 사제의 축복을 허용한 결정은 그의 개혁 의지를 보여줍니다.
  • 환경과 평화: 2015년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기후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쿠바-미국 국교 정상화, 이라크 방문 등을 통해 평화와 종교 간 화합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진보적 행보는 가톨릭 내 보수파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018년 비가노 대주교의 폭로로 성범죄 은폐 의혹이 제기되었고, 아르헨티나 군사정권 시절 예수회 신부 체포 방조 논란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소외된 이들을 위한 헌신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평가받았습니다.


3. 유언의 배경 :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의 의미

프란치스코 교황이 안장 장소로 선택한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은 로마의 4대 대성전 중 하나로, 성모 마리아에게 헌신된 성당입니다. 그는 생전 이곳을 자주 방문해 기도했으며, 해외 순방 전후로 성당의 성모상을 찾아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유언에서 “평생 성모 마리아께 스스로를 맡겨왔다”고 밝힌 것은 그의 깊은 마리아 신심을 보여줍니다.

역사적으로 이 성당에 안장된 교황은 1669년 클레멘트 9세를 포함해 단 7명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택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장되던 최근 전통을 깨는 결정이었습니다. 이는 그의 삶이 교황의 권위나 전통보다 성모 마리아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헌신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4. 마지막 메시지 : 평화와 소외된 이들을 향한 부름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종 직전까지 평화와 소외된 이들을 위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2025년 부활절 미사에서 그는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중단을 호소하며 “휴전을 요청하고, 인질을 풀어주고, 굶주린 사람들을 돕자”고 역설했습니다. 이는 그의 유언에서 강조된 “세계 평화와 인류의 형제애”와 맥을 같이합니다.

그는 2014년 한국 방문 당시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며 “꼭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약속했고, 유가족은 그의 진심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또한 “돈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며 경제적 불평등과 탐욕을 비판하고, 인간 존엄과 연대를 강조했습니다.


5. 유언의 의미와 교황의 유산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언은 단순한 무덤 요청을 넘어, 그의 신앙과 삶의 철학을 집약한 선언입니다. 그는 죽음마저도 화려함을 배제하고, 성모 마리아와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한 삶을 기리며 평화를 기원했습니다.

이는 가톨릭 교회와 전 세계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깁니다.

  • 겸손의 모범: 화려한 장식이나 권위를 거부한 그의 선택은 모든 신자에게 겸손과 청빈의 가치를 상기시킵니다.
  • 포용과 개혁: 성소수자 포용, 여성 역할 확대, 환경 보호 등 그의 개혁은 교회가 시대에 응답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 평화의 사명: 전쟁과 불평등에 맞서 평화와 연대를 추구한 그의 호소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울림을 줍니다.

그러나 그의 개혁은 보수파의 저항과 내부 갈등을 낳았고, 성범죄 은폐 의혹과 같은 논란은 그의 유산에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톨릭 교회의 문을 열고 소외된 이들을 품으며 “행동하는 성직자”로 기억될 것입니다.


6. 미래로의 물음 : 프란치스코의 길을 이어갈 이는 누구인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으로 차기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가 2025년 5월 시작될 예정입니다. 그는 최초의 비유럽권 교황으로서 아시아나 아프리카 출신 교황의 가능성을 열었으며, 그의 개혁적 행보는 차기 교황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교황청은 그의 사인을 뇌졸중과 심부전으로 발표했으며, 이는 그의 마지막 순간까지 신자들을 위해 헌신한 삶을 상징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그의 유언은 단순한 개인적 바람을 넘어, 가톨릭 교회와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합니다. 과연 그의 뒤를 이어 누가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의 비전을 이어갈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언은 그의 삶의 연장선이자, 겸손, 포용, 평화의 메시지로 가득 찬 마지막 가르침입니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의 단순한 무덤에 잠들기를 원한 그는, 성모 마리아의 품에서 인류의 평화를 기도하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유산은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모든 이에게 인간 존엄과 연대의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라는 이름만을 비문에 남기고자 했던 그의 바람처럼, 그의 삶은 단순하지만 강렬한 울림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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