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한국과 대만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 삼성전자와 TSMC의 주가 상승률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삼성전자는 111% 상승에 그친 반면, TSMC는 무려 651% 급등하며 6배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두 기업은 수출 중심 경제를 이끄는 한국과 대만의 주식시장을 상징하는 존재다. 하지만 이 격차는 단순히 기업 간 성과 차이를 넘어, 두 나라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갈라진 운명을 보여준다. 2015년만 해도 비슷했던 한국과 대만 증시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말 1300조 원 이상 벌어졌고, 그 중심에는 TSMC의 약진과 삼성전자의 부진이 자리 잡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두 기업의 10년 주가 추이와 그로 인한 시장 변화를 분석하며, 한국 증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해본다.
10년간의 주가 상승률: 111% vs 651%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삼성전자와 TSMC의 주가 흐름은 두 기업의 성장 궤적을 명확히 드러낸다. 2015년 말 삼성전자 주가는 2만 5200원(수정 주가 기준)에서 지난해 말 5만 3200원으로 111% 상승했다. 2만 8000원의 증가폭은 결코 작지 않지만, 같은 기간 TSMC의 성과와 비교하면 초라해 보인다. TSMC 주가는 143대만달러(약 6333원)에서 1075대만달러(약 4만 7611원)로 651% 급등하며 4만 1278원의 상승분을 기록했다. 이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TSMC는 글로벌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며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었고, 삼성전자는 그만큼의 성장 동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이 주가 격차는 두 나라 주식시장 시가총액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2015년 말 대만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28조 3048억 대만달러(1253조 원)였으나, 지난해 말 81조 6717억 대만달러(3617조 원)로 2363조 원 늘었다. 반면 한국 주식시장은 같은 기간 1406조 원에서 2244조 원으로 838조 원 증가에 그쳤다. 대만 증시의 상승분이 한국의 2배를 넘어서며, 지난해 말 기준 양국 간 시가총액 격차는 1327조 원에 달했다. 특히 TSMC는 대만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3%에서 34%로 급등하며 시장 성장을 주도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한국 증시에서 13%에서 14%로 1%포인트 늘어나는 데 머물렀다. 대장주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삼성전자의 저평가
한국 증시가 대만에 뒤처진 이유로 전문가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꼽는다. 이는 한국 주식시장이 만성적으로 저평가되는 현상을 뜻하며, 지정학적 리스크, 기업 지배구조 문제, 낮은 배당 성향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삼성전자의 주가수익비율(PER)은 11.88배로 코스피 평균(13.22배)보다 낮고, TSMC(20배 이상)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주가순자산비율(PBR)도 1.01배로 코스피(0.88배)보다 약간 높을 뿐, 기업 이익 대비 주가가 저평가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반면 TSMC는 높은 PER을 유지하며 시장의 높은 기대치를 반영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저평가는 단순히 숫자에 그치지 않는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강자지만,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장에서는 TSMC에 밀리고 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4년 4분기 TSMC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67.1%로 전 분기 대비 2.4%포인트 상승했으나, 삼성전자는 9.1%로 1%포인트 하락했다. TSMC가 지난 10년간 설비투자를 대폭 늘리며 5나노, 3나노 공정에서 선두를 달리는 동안, 삼성전자는 기술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주가와 시가총액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대만 증시의 성공 요인: TSMC의 역할
TSMC의 성공은 대만 증시 상승의 핵심 동력이다. TSMC는 애플, 엔비디아, 퀄컴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주요 파운드리 파트너로 자리 잡으며, AI와 5G 시대의 수혜를 톡톡히 누렸다. 2015년 6조 3000억 대만달러(약 280조 원)였던 TSMC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말 27조 7000억 대만달러(약 1226조 원)로 4배 이상 성장했다. 이는 대만 증시 전체 시가총액 증가분(2363조 원)의 절반 이상을 TSMC가 기여했음을 의미한다. TSMC는 기술 혁신과 고객 확보를 통해 안정적인 매출과 이익을 창출하며 투자자 신뢰를 얻었다.
반면 삼성전자는 비슷한 기간 시가총액이 150조 원에서 320조 원으로 약 2배 증가하는 데 그쳤다. 메모리 반도체의 주기적 변동성과 파운드리 경쟁력 약화가 발목을 잡았다. 특히 2024년 삼성전자는 HBM(고대역폭 메모리) 공급 지연과 반도체 수익성 악화로 주가가 30% 이상 하락하며, 한국 증시 전체에 부담을 주었다. 대만 증시가 TSMC를 중심으로 상승 랠리를 이어간 것과 달리, 한국 증시는 삼성전자의 부진으로 정체 상태에 머물렀다.
한국 증시의 과제: 삼성전자의 체질 개선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고 상승 궤도에 오르려면 삼성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여은정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삼성전자가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며 “적극적인 투자 결정과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 역시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 같은 단기 이벤트로는 한계가 있다”며 “기업 환경 개선과 장기 성장 전략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가 TSMC와의 격차를 좁히려면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가 시급하다. TSMC는 2나노 공정에서 60% 이상 수율을 달성하며 2025년 양산을 준비 중이지만, 삼성전자는 3나노 GAA 공정에서 수율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는 10조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하며 주가 부양에 나섰지만, 근본적인 체질 개선 없이는 한계가 뚜렷하다. 업계에서는 파운드리 고객 다변화, R&D 투자 확대, 유연한 근로 환경 조성 등이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높일 방안으로 꼽힌다.
한국 증시의 미래를 위한 제언
한국 증시가 대만을 따라잡으려면 삼성전자뿐 아니라 금융당국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부는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 가치 제고를 유도하고 있지만, 실효성 논란이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주 52시간제와 같은 획일적 규제를 완화하고,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영문 공시 확대, 세제 혜택 등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대만은 TSMC 외에도 UMC, PSMC 같은 중견 파운드리 기업들이 균형 잡힌 생태계를 이루며 시장을 뒷받침한다. 한국도 SK하이닉스와 같은 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반도체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삼성전자가 TSMC와의 주가 격차를 줄이고, 한국 증시가 1300조 원의 시가총액 차이를 좁히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시작은 삼성전자의 체질 개선과 정부의 과감한 정책 전환에서 비롯된다. 10년간의 주가 상승률 111% vs 651%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한국 증시가 풀어야 할 숙제를 상징한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다시 우뚝 서고, 한국 증시가 상승 랠리를 펼치는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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