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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파키스탄 78년 분쟁의 전말

인앤건LOVE 2025. 5. 5. 18:40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은 1947년 영국 식민지 인도가 분리 독립하면서 시작된, 현대 국제 정치에서 가장 오래되고 위험한 갈등 중 하나입니다. 특히 카슈미르 지역을 둘러싼 영유권 분쟁은 세 차례 전면전과 수많은 국지전을 촉발했으며, 양국이 핵무기를 보유한 이후에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위협으로 부상했습니다. 2025년 카슈미르 파할감 테러 사건은 이 갈등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핵전쟁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글에서는 분쟁의 기원, 주요 전쟁, 핵무기와 국제적 역학, 그리고 최근 동향을 살펴보겠습니다.


분쟁의 기원 : 1947년 분리 독립과 카슈미르

인도-파키스탄 분쟁의 뿌리는 1947년 영국이 인도 식민지를 떠나면서 시작된 분리 독립에 있습니다. 영국은 종교를 기준으로 힌두교 중심의 인도와 이슬람교 중심의 파키스탄으로 인도를 분할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약 1,400만 명이 이주하고, 20만~200만 명이 종교적 폭력으로 사망하며 깊은 적대감이 형성되었습니다.

가장 큰 쟁점은 카슈미르 지역이었습니다. 카슈미르는 무슬림이 다수였지만, 힌두교도 마하라자 하리 싱이 통치했습니다. 하리 싱은 독립을 유지하려 했으나, 파키스탄 지원 부족민의 침공과 내부 반란에 직면해 1947년 10월 인도에 가입을 결정했습니다. 이는 파키스탄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양국 간 첫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주요 전쟁과 갈등

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1947~1948)

파키스탄이 지원한 부족민이 카슈미르를 침공하자, 인도는 군대를 파견해 대응했습니다. 전쟁은 1948년 유엔 중재로 휴전되며, 카슈미르의 약 2/3를 인도, 1/3를 파키스탄이 통제하는 정전선(CFL, 후에 실질통제선 LoC로 변경)이 설정되었습니다. 유엔은 주민투표를 제안했으나, 양국은 이를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1965)

파키스탄은 카슈미르에서 반란을 조장하기 위해 ‘지브롤터 작전’을 실행, 무장 세력을 침투시켰습니다. 인도는 전면전으로 대응하며 라호르까지 진격했습니다. 전쟁은 소련과 미국의 중재로 타슈켄트 선언(1966)으로 끝났지만, 카슈미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1971)

이 전쟁은 카슈미르와 무관하게 동파키스탄(현 방글라데시)의 독립운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파키스탄 정부의 탄압으로 1,000만 명의 난민이 인도로 유입되자, 인도는 방글라데시 독립군을 지원했습니다. 전쟁은 인도의 승리로 끝났고,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로 독립했습니다. 1972년 심라 협정은 카슈미르의 LoC를 공식화했으나 갈등의 씨앗은 남았습니다.

카길 분쟁 (1999)

파키스탄 군과 지원 무장 세력이 카슈미르 카길 지역의 인도 군사 초소를 점령하며 충돌이 시작되었습니다. 인도는 대규모 군사 작전으로 이를 탈환했고, 미국의 중재로 파키스탄은 철수했습니다. 양국이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에서의 첫 충돌로, 핵전쟁 위험이 전 세계를 긴장시켰습니다.

기타 주요 사건

  • 2001~2002년 대치: 인도 의회 테러 공격(파키스탄 기반 단체 소행으로 의심)으로 양국은 LoC에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켰으나, 국제 중재로 전쟁은 피했습니다.
  • 2008년 뭄바이 테러: 파키스탄 기반 라쉬카르에타이바(LeT)의 공격으로 166명이 사망하며 긴장이 고조되었습니다.
  • 2019년 풀와마 테러와 발라코트 공습: 카슈미르 풀와마에서 40명의 인도 준군사조직원이 테러로 사망하자, 인도는 파키스탄 내 테러 캠프를 공습했습니다. 파키스탄은 보복 공습과 인도 전투기 격추로 대응했으나, 인도 조종사를 석방하며 긴장이 완화되었습니다.

핵무기와 국제적 역학

인도는 1974년 ‘스마일링 부다’ 작전으로 첫 핵실험에 성공했고, 파키스탄은 1998년 이에 맞서 핵실험을 완료했습니다. 양국의 핵무기 보유는 분쟁의 위험성을 극대화했습니다. 1999년 카길 분쟁과 2019년 발라코트 공습 당시 핵전쟁 우려가 제기되었으며, 이는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중재를 촉발했습니다.

국제적 역학도 복잡합니다. 미국은 인도를 전략적 파트너로 삼아 무기와 기술을 제공하며 중국 견제를 강화하고, 중국은 파키스탄을 ‘전천후 동맹’으로 지원하며 인도와의 긴장을 간접적으로 조장합니다. 이러한 대리전 양상은 지역 안정성을 더욱 위협합니다. 1988년 양국은 핵시설 공격 금지 협정(NAA)을 체결해 핵전쟁 위험을 완화하려 했으나, 지속적인 갈등은 이 협정의 실효성을 의문시하게 합니다.


최근 동향 : 2025년 파할감 테러와 전면전 우려

2025년 4월 22일, 인도령 카슈미르 파할감에서 관광객 26명(대부분 인도인)이 테러 공격으로 사망했습니다. 인도는 파키스탄 기반의 라쉬카르에타이바(LeT) 산하 저항전선(TRF)을 배후로 지목하며 강경 대응에 나섰습니다. 주요 조치로는 인더스강 물 조약 중단, 파키스탄인 비자 취소, 아타리-와가 국경 폐쇄, 외교관 축출 등이 포함됩니다.

파키스탄은 테러 연루를 부인하며 인도 항공기의 영공 진입 금지, 무역 중단, 심라 협정 중단 등으로 맞섰습니다. 파키스탄 국방부 장관은 “인도 공격이 24~36시간 내 임박했다”며 강력 대응을 경고했고, 양국은 LoC에서 소규모 교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도 드론 격추와 파키스탄의 라팔 전투기 순찰 보고는 긴장이 고조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경제·외교적 단절

양국은 사실상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무역과 영공을 폐쇄했습니다. 인도의 인더스강 조약 중단은 파키스탄의 농업과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으며, 파키스탄은 이를 “전쟁 행위”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양국의 경제적 상호 의존성을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 양측 모두에게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큽니다.

카슈미르 불안정 심화

파할감 테러는 카슈미르의 민간인을 겨냥한 25년 만의 최악의 공격으로, 분리주의 무장 세력의 활동 재개를 예고합니다. 인도는 2019년 카슈미르의 자치권 박탈 이후 강력한 통제를 유지했으나, 이번 사건은 지역 내 반감과 불안정성을 드러냈습니다.

국제사회의 대응

유엔은 “최대 자제”를 촉구하며 외교적 해결을 강조했고, 미국은 인도의 대테러 노력을 지지하면서도 상황 악화를 우려했습니다. 중국은 파키스탄을 지지하며 중재 의사를 밝혔고, 이란과 러시아도 긴장 완화를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카슈미르 분쟁이 1,500년 된 문제”라는 부정확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분쟁의 현재와 미래

인도-파키스탄 분쟁은 카슈미르의 영유권, 종교적 갈등, 핵무기 경쟁, 그리고 대리전의 복합적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025년 파할감 테러는 양국의 신뢰 부족과 강경 정책이 얼마나 빠르게 갈등을 악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핵무기 보유국 간의 충돌은 지역적 문제를 넘어 글로벌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국제사회의 중재와 양국의 핵 억제력이 전면전을 막을 가능성이 있지만, 장기적으로 카슈미르 문제의 근본적 해결 없이는 갈등이 반복될 것입니다. 카슈미르 주민의 자결권, 양국의 경제적 협력, 그리고 상호 신뢰 구축이 필요하지만, 현재의 정치적·종교적 분위기에서는 이 모든 것이 어려운 과제입니다.


인도-파키스탄 분쟁은 1947년 분리 독립 이후 카슈미르를 중심으로 한 영유권 다툼에서 시작되어 세 차례 전면전, 카길 분쟁, 그리고 수많은 테러와 대치로 이어졌습니다. 핵무기 보유와 국제적 대리전은 이 갈등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었으며, 2025년 파할감 테러는 양국의 군사적·외교적 긴장이 전면전으로 비화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국제사회는 이 지역의 안정성을 위해 적극적인 중재와 대화 촉진에 나서야 하며, 양국은 상호 파괴적 결과를 피하기 위해 신중한 접근을 취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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