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행정부의 SNS 감시와 비자 취소, 침묵을 강요받는 유학생들
2025년 4월, 미국 대학가에 공포가 번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유학생 비자 취소 정책이 급격히 확대되며 외국인 유학생들이 숨죽이고 있다.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거나 소셜미디어(SNS)에 글을 올리는 것조차 비자 취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이 캠퍼스를 뒤덮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유학생들이 SNS 계정을 비활성화하고, 수업과 캠퍼스 생활에서 발언을 자제하며 "보이지 않는 감시"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제교육자협회(NAFSA)에 따르면, 2025년 3월 중순 이후 비자 취소 또는 연방정부 기록이 말소된 유학생·연구자는 약 1000명에 달한다. 미 이민변호사협회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최소 4700건의 유학생 기록 말소 사례를 추정한다. 이 글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비자 취소 정책, 그로 인한 대학가의 변화, 유학생들의 불안, 그리고 이 정책의 문제점을 다각도로 살펴본다.

트럼프의 비자 취소 정책 : 배경과 전개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1월 재취임 직후, 반유대주의 대응을 명분으로 외국인 유학생 비자 취소를 강화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그는 특히 친팔레스타인 시위에 참여한 유학생들을 타겟으로 삼으며, 이들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국무부 장관 마르코 루비오는 3월 말 "300명 이상의 비자를 취소했다"며, "매일 이런 미치광이들의 비자를 취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정책은 국무부의 ‘Catch and Revoke’ 프로그램을 통해 실행된다. 이 프로그램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유학생들의 소셜미디어 기록을 조사하고, 하마스 지지나 테러 단체 옹호로 의심되는 활동을 근거로 비자를 취소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경미한 교통 위반, 과거의 소소한 법적 문제, 심지어 이유 없이 비자가 취소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은 학생·교환방문자 정보시스템(SEVIS)에서 유학생 기록을 삭제하며 법적 체류 자격을 즉시 상실시키는 방식으로 정책을 집행한다. 이는 기존 국무부의 비자 취소 절차와 달리, 학교나 학생에게 사전 통보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유학생들은 갑작스럽게 추방 위협에 직면하며, 일부는 즉시 출국하거나 구금된다.
대학가의 변화 : 침묵과 공포의 캠퍼스
트럼프의 정책은 미국 대학가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꿨다. 유학생들은 정치적 발언은 물론 일상적인 SNS 활동조차 삼가고 있다. 애리조나주립대의 브라질 출신 기계공학 전공 유학생은 WP에 "정치적 견해를 나누는 게 두렵다"며 "언론의 자유와 정부에 대한 위협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토로했다. 조지타운대의 캐나다·이란 국적 학생은 시민권 신청에 영향을 줄까 봐 SNS 계정을 비활성화하고, 학생회 활동에서도 특정 대화에 참여하지 말라는 권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조지메이슨대에서는 최소 15명의 유학생이 비자 취소를 당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친팔레스타인 시위 참여로 체포된 경우지만, 다른 이들은 교통법 위반이나 범죄 피해자로서 억울하게 포함됐다. 심지어 비자 취소 사유를 통보받지 못한 경우도 허다하다. 캘리포니아대(UC) 시스템에서는 57명 이상의 비자가 취소됐고, 하버드, 스탠퍼드, 컬럼비아 등 명문대도 예외가 아니다.
대학들은 혼란에 빠졌다. UC 버클리, UC 데이비스, 스탠퍼드는 비자 취소 사실을 SEVIS 데이터베이스에서 뒤늦게 확인하고 학생들을 지원하려 애쓰지만, 연방정부의 불투명한 절차 탓에 한계에 부딪힌다. 일부 학교는 유학생들에게 봄방학 해외 여행 자제를 권고하며, "트럼프 취임 전 미국으로 돌아오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유학생들의 불안 : "다음은 나일까?"
유학생들은 언제든 자신이 다음 타겟이 될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컬럼비아대의 인도 출신 박사 과정 학생 란자니 스리니바산은 3월 7일 비자 취소 통보를 받고 캐나다로 도피했다. 터프츠대의 터키 학생 루메이사 외즈튀르크는 친팔레스타인 관련 논설을 썼다는 이유로 체포돼 구금됐다. 코넬대의 영국·감비아 이중국적 학생 모모두 탈은 시위 참여로 비자를 잃고 자진 출국했다. 이들은 모두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SNS에는 유학생들의 불안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 사용자는 "SNS 과거 글이 추방 사유가 될 수 있다"며 계정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사용자는 "미국이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공산주의 국가 같아졌다"고 비판하며, 국토안보부의 SNS 감시 태스크포스 소식을 전했다. 이러한 반응은 유학생들이 느끼는 압박감과 공포를 생생히 보여준다.
특히 중동 출신이나 유색인종 유학생들이 주 타겟으로 지목되며, 정책이 인종적 편향을 띤다는 비판도 나온다. 컬럼비아 로스쿨 이민자권리클리닉의 엘로라 무케르지 교수는 "이 정책은 비백인 유학생들에게 당신은 환영받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낸다"고 지적했다.

출처 : 매일경제
정책의 문제점 : 불투명성과 법적 논란
트럼프 행정부의 비자 취소 정책은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불투명한 절차다. 대학과 학생들은 비자 취소 사유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미 이민변호사협회의 제프 조지프 변호사는 "SEVIS 기록 삭제는 법적 요건에 맞지 않는 불법 행위"라며, "학생들은 정당한 절차 없이 학업을 잃고 있다"고 비판했다.
둘째, 모호한 기준이다. 행정부는 1952년 이민국적법의 "외교 정책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 조항을 활용하지만, 구체적 증거 없이 시위 참여나 SNS 게시물을 근거로 삼는다. 이는 언론의 자유 침해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크다. 뉴욕대 로버트 코헨 교수는 "시위나 친팔레스타인 편지를 이유로 학생을 추방하는 건 반대 의견을 억압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셋째, 과도한 권한 남용이다. ICE가 SEVIS를 통해 일방적으로 기록을 삭제하며, 학생들은 변호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19개 주 법무장관은 4월 11일 연방법원에 이 정책의 중단을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하며, "비자 취소는 이념적 추방을 위한 겁박"이라고 주장했다.
넷째, 경제적·학문적 손실이다. 미국은 약 110만 명의 유학생을 보유하며, 이들이 매년 440억 달러를 경제에 기여한다. 유학생은 STEM 분야 대학원생의 50~70%를 차지하며, 미국의 기술 혁신을 뒷받침한다. NAFSA의 판타 아우 회장은 "유학생 감소는 미국 고등교육과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해외 사례와 비교 : 자유와 감시의 갈림길
비슷한 맥락에서, 캐나다와 영국은 유학생의 정치적 표현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운영한다. 캐나다 이민국은 유학생의 시위 참여를 비자 취소 사유로 삼지 않으며, 영국은 표현의 자유법(2023년)을 통해 대학 내 정치적 발언을 보장한다. 반면, 중국은 유학생의 SNS를 감시하며 해외 활동을 통제하지만, 이는 공산주의 체제의 특성으로 여겨졌다. 미국의 현 정책이 중국식 감시와 유사하다는 비판은 그래서 더욱 날카롭다.
한국 유학생의 현실 : 조심 또 조심
한국 유학생들도 예외가 아니다. 2024~2025년 기준, 미국 내 한국 유학생은 약 7만 명으로, 중국·인도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이들은 주로 컴퓨터과학, 경영, 음악 등 전공을 공부하며, 졸업 후 OPT(선택실습훈련)나 H-1B 비자를 통해 미국에 남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비자 취소 공포는 이들의 꿈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X에서 한 한국 유학생은 "트럼프 정책 때문에 정치 관련 대화는 아예 피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이는 "과거 올린 페이스북 글 때문에 불안하다"며 계정을 삭제했다고 전했다. 한국 유학생 커뮤니티에서는 "SNS 정리법"이나 "비자 유지 팁"이 공유되며, 보수적인 자기검열이 확산되고 있다.
대안과 해결책 : 무엇이 필요할까?
트럼프의 비자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몇 가지 방안이 논의된다.
첫째, 법적 대응이다. 유학생들은 소송을 통해 부당한 비자 취소를 막고 있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대의 두 학생은 ICE의 불법적 기록 삭제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둘째, 대학의 지원 강화다. UMass Amherst는 비자 취소 학생을 위한 Angel Fund를 운영하며 재정 지원을 제공한다. UC 시스템은 법률 상담과 학업 연장 옵션을 마련했다. 한국 유학생들도 대학의 국제학생센터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셋째, 국제적 연대다. NAFSA와 ACLU는 유학생의 권리를 옹호하며, 트럼프 정책이 헌법 위반임을 강조한다. 캐나다·유럽 대학들이 미국 유학생을 초청하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넷째, 자기 보호다. 유학생들은 SNS에서 민감한 주제를 다룰 때 익명 계정을 사용하거나, 비공개 설정을 강화할 수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SEVIS 상태를 확인하고, 변호사와의 연락망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싸움
트럼프 행정부의 유학생 비자 취소 정책은 단순한 이민 단속을 넘어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위협한다.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캠퍼스의 비나 두발 교수는 "모두가 잠재적 표적이라는 공포는 미국 전역에 냉각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학생들은 미국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지금은 그 꿈이 불확실성으로 가려져 있다. 한국 유학생을 포함한 전 세계 학생들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연대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지키려 싸워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돌아보며 우리가 배운 것은 침묵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정책에 맞서 유학생들이 용기를 내고, 대학과 시민사회가 함께한다면, 캠퍼스는 다시 자유로운 배움의 장소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