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이

서울의 사라진 가게들, 자영업 위기의 현주소

인앤건LOVE 2025. 4. 16. 15:10

비 내리는 서울의 골목

2024년, 서울의 거리는 한층 더 조용해졌다. 번화했던 상권에 빈 점포가 늘어나고, 익숙했던 네일숍과 식당 간판이 하나둘 사라졌다. 세계일보의 조사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서울에서 네일숍 335곳과 외식업체 1775곳이 문을 닫았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자영업자들의 꿈과 생계가 무너진 기록이다. 서초구의 네일숍 주인 국모(40) 씨는 “코로나19 때보다 더 어렵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의 삼중고 속에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자, 미용과 외식처럼 ‘필수적이지 않은’ 소비부터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에 정치적 혼란까지 더해지며 자영업자들은 끝없는 터널 속을 걷고 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서울 자영업의 위기를 데이터와 생생한 현장 목소리로 들여다보고, 그 원인과 해결책을 모색해본다.


자영업의 몰락 : 네일숍과 식당의 폐업 랠리

세계일보의 분석은 서울의 자영업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네일숍은 2020년 1분기 3027곳에서 2023년 4분기 4061곳으로 꾸준히 성장하며 코로나19 시기에도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2024년, 분위기가 반전됐다. 4분기 기준 네일숍은 3726곳으로 줄며 1년 새 335곳이 사라졌다. 외식업도 마찬가지다. 13만6000곳을 넘기며 성장하던 외식업체 수는 2024년 4분기 13만4761곳으로 쪼그라들었다. 1775곳이 문을 닫은 셈이다. 비수기인 겨울을 거치며 이 숫자는 더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초구에서 네일숍을 운영하는 국모 씨의 이야기는 이 숫자 뒤의 현실을 생생히 전한다. 그는 공동창업자 유모(37) 씨와 직원 없이 가게를 꾸려가지만, 월세와 운영비 부담이 갈수록 커진다. “지난해 여름부터 손님이 줄었고, 연말연초에도 회복되지 않았다”며 계엄 사태 이후 소비 심리가 얼어붙었다고 토로했다. 같은 지역의 미용실 주인 김모(34) 씨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다. 예약이 꽉 차던 주말이 옛말이 됐고, 비싼 펌 대신 염색이나 커트만 찾는 손님이 늘었다. 그는 “집에서 머리를 손질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소비 패턴의 변화를 지적했다.

외식업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을지로에서 2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한 김모(58) 씨는 “단골 외에 새 손님이 확 줄었다”고 말했다. 외식은 먹고살기 팍팍해진 소비자들이 가장 먼저 줄인 지출 항목이다. 골목 상권 전체가 비슷한 위기를 겪으며, 상가 공실은 눈에 띄게 늘었다. 예를 들어, 서대문구 이대입구역 인근은 공실로 방치된 상가가 늘어나며 예전의 활기를 잃었다.


삼중고: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의 덫

자영업 위기의 근본 원인은 경제적 삼중고다. 고금리는 대출 이자 부담을 키웠다. 한국은행은 2022년부터 기준금리를 올려 2024년까지 3.5% 수준을 유지했다. 이는 자영업자들이 대출로 운영비를 충당하던 관행에 직격탄이 됐다. 고물가는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떨어뜨렸다. 2024년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2.3% 상승하며, 식재료와 에너지 비용이 외식업과 미용업의 수익성을 갉아먹었다. 고환율은 수입 원자재 가격을 올려 운영비를 더욱 가중시켰다. 네일숍의 젤 제품이나 식당의 수입 식재료 가격이 치솟으며, 가격 인상 없이 버티기 어려워졌다.

이 삼중고는 소비 심리를 얼어붙게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한 포스트는 이를 잘 요약한다: “안 꾸미고, 안 먹고, 안 사요.” 소비자들이 필수 소비 외에는 지출을 최소화하며, 네일, 헤어, 외식 같은 ‘사치’로 여겨지는 항목부터 멀리했다. 이는 자영업자들에게 치명적이었다. 특히 네일숍과 식당은 충동적·감성적 소비에 의존하는 업종으로, 소비 위축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았다.


연체의 늪: 금융 위기로 내몰리는 자영업자

경제적 압박은 자영업자들을 금융 위기로 몰아넣었다. 금융권 데이터에 따르면, 2024년 4분기 저축은행의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은 11.70%로, 9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여신전문금융사(카드·캐피탈)의 연체율도 3.67%로 10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이는 자영업자들이 대출 상환조차 버거워하며 연체의 늪에 빠졌음을 보여준다.

서초구의 국모 씨는 “대출 이자가 매달 수십만 원씩 나간다”며, 월세와 이자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했다. 을지로의 김모 씨도 “코로나 때는 정부 지원금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 도움 없이 버텨야 한다”고 푸념했다. 자영업자 대출은 2024년 말 기준 약 1200조 원으로 추정되며, 이 중 상당수가 고금리로 상환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연체율 상승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가게 문을 닫고 생계를 위협받는 이들의 절박함을 반영한다.


정치 불안: 계엄과 탄핵의 그림자

경제적 요인 외에도 2024년의 정치적 혼란은 자영업 위기를 심화시켰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언과 이후 탄핵, 조기 대선 논의는 소비 심리를 급격히 위축시켰다. 국모 씨는 “계엄 사태 이후 손님이 더 줄었다”며, 사람들이 불안해하며 외출과 소비를 줄였다고 전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교수는 “정치 불안은 소비와 투자 심리를 얼어붙게 한다”며, 계엄부터 탄핵까지 이어진 혼란이 내수 위축의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정치적 불안은 외국인 투자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024년 말 외국인 주식 매도가 급증하며 코스피가 흔들렸다. 한국 원화는 달러당 1480원까지 치솟아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 자영업자들의 수입 비용을 더욱 가중시켰다. 정치적 리더십 공백은 경제 정책의 일관성을 떨어뜨려, 자영업자들에게 불확실성만 안겼다.


글로벌 압박: 트럼프와 관세의 위협

세계 경제의 변화도 자영업에 간접적 타격을 줬다. 2025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고관세 정책은 한국 수출 기업에 위협이 됐다. 김대종 교수는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높아, 관세 부담이 기업의 고용과 투자를 줄이고, 이는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반도체와 자동차 중심의 대기업이 흔들리면, 골목 상권의 식당과 네일숍까지 영향을 받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희망의 불씨: 회복을 위한 제언

자영업 위기를 극복하려면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금리 인하가 시급하다. 한국은행은 2025년 2월 기준금리를 2.75%로 낮췄지만, 추가 인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둘째, 소상공인 지원 강화다. 코로나 시기처럼 대출 상환 유예나 임대료 지원 같은 실질적 정책이 절실하다. 셋째, 정치 안정이 핵심이다. 조기 대선과 안정적 리더십이 소비 심리를 되살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소비 진작을 위한 세제 혜택이나 지역 화폐 같은 정책이 내수 회복에 기여할 수 있다.

김대종 교수는 “서민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위기 속에서, 정부는 적극적인 기업 보호와 글로벌 협상을 통해 경제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영업자들 또한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네일숍은 SNS 마케팅이나 저렴한 패키지 상품으로 고객을 유도하고, 식당은 배달 서비스나 간편 메뉴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다시 비가 그치기를

2024년, 서울의 네일숍 335곳과 식당 1775곳이 문을 닫았다. 이는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의 삼중고와 정치적 불안이 맞물린 결과다. 국모 씨, 김모 씨의 한숨은 자영업자 수십만 명의 현실을 대변한다. 하지만 위기는 새로운 기회를 낳는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자영업자들의 혁신, 그리고 소비자들의 따뜻한 손길이 있다면, 서울의 골목은 다시 활기로 채워질 것이다. 소나기가 그치고 햇살이 비추듯, 자영업의 봄도 머지않기를 바란다.

 
728x90